80세의 전 독일 외교관 한스 요아힘 데어는 1956년, 그의 아버지가 한국 임무에서 돌아온 해를 회상하며 올려다보았다 ⓒ연합뉴스
[서울=서울미디어뉴스] 김영미 기자 =80세의 전 독일 외교관 한스 요아힘 데어는 1956년, 그의 아버지가 한국 임무에서 돌아온 해를 회상하며 올려다보았다. 그는 1974년 부산을 방문하여 전쟁 후 서독 적십자 병원으로 사용된 부산 여자고등학교를 견학하고, 아버지와 함께 일했던 한국 의사를 만났다고 전했다.
부산에서 1954년 5월부터 1959년 3월까지 운영된 독일 적십자 병원은 227,250명의 환자를 치료하고 6,025명의 출산을 도왔으며, 파견된 의료 인력은 한국 의사와 간호사에게 의료 기술을 전수하는 역할을 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의료 인력 부족을 겪고 있던 독일로 10,000명 이상의 한국 간호사가 환자를 돌보기 위해 이주했다.
독일이 한국전에 참여한 것을 기리는 기념 조각상이 베를린의 독일 적십자 마당에 세워졌다. 독일 동향 강동환 조각가가 만든 이 청동 조각상은 남녀 장승 형태로, 전쟁의 공포에 놀란 적십자 관리를 상징하는 천하장군과 그를 치유한 간호사를 상징하는 지해장군으로 표현되었다.
독일은 한국전 당시 국제 사회에서 고립된 상태였고, 정전 협정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의료 지원 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에는 한국 정부가 독일을 참전국(의료 지원국)으로 인정하고 의료 인력 117명을 참전 용사로 인정했다.
독일 적십자의 부회장 볼크마르 쇤은 "한국에서의 임무는 독일 적십자 160년 역사 중 가장 길고 어려운 임무였다"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파견된 우리의 활동을 통해 세계 어디에서나 중립을 유지하면서 필요한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치과 기술자였던 휘버트 메이어와 간호사였던 헤드비그 메이어는 전쟁 후 부산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독일 적십자는 이들의 활동을 기록한 책 '그들은 우리 마음에 용기를 주었다'를 한국어와 독일어로 발간했다. 이 책에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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