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에서 미국제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 실사격 훈련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군. 재블린 미사일은 러시아군 전차, 장갑차 등을 파괴하는 데 큰 위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photo 뉴시스
‘항공기 29대, 헬기 29대, 전차 191대, 장갑차량 816대, 야포 74문….’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가 지난 2월 28일(현지시각) 발표한 러시아군 무기 파괴 전과다. 전쟁 중엔 어느 나라든 아군의 피해는 줄여서, 적군의 피해는 부풀려서 발표하게 마련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러시아군 피해가 예상보다 크다는 데는 이론이 없는 듯하다. 여기엔 젤렌스키 대통령 등 우크라이나 지도자들과 국민, 군의 결사항전 의지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군의 작지만 강한 무기들도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은 미국제 FGM-148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이다. 보병이 어깨 위에 올려놓고 쏠 수 있는 경량 무기지만 러시아군 신형 전차들까지 고철로 만들 만큼 정확도와 위력이 뛰어나 러시아군 진격을 지연시키는 ‘저항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재블린은 우크라이나군이 2018년부터 미국에서 도입했는데 ‘성스러운 재블린(St. Javelin)’으로 불릴 정도다. 미국에서 개발 승인부터 실전배치(1996년)까지 약 10년이 걸렸고, 사실상 최초의 ‘발사 후 망각(Fire & Forget)’형 대전차 미사일이다. 미사일을 쏜 뒤 목표물까지 계속 유도할 필요 없이 잊어버려도 되는, 즉 스스로 목표물을 찾아가는 무기다. 열상장치로 발견한 적 전차나 목표의 실루엣을 미사일이 기억한 뒤 발사되면 미사일은 탄두 자체에 있는 열상장치가 보는 영상과 기억된 실루엣을 대조, 적의 위치를 향해 비행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사수는 미사일이 발사된 직후 그 자리를 떠날 수 있고, 조준경을 따로 떼어 먼저 적의 영상을 입력한 다음 미사일 본체와 결합, 조준 없이 발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 미사일 발사 때 생기는 후폭풍이 구형 미사일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줄어들어 밀폐된 공간에서의 사격도 가능하다. 사수가 발견될 확률이 매우 낮아져 생존성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특히 재블린은 직사 모드와 상부공격 모드 등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해 적 전차나 장갑차량의 가장 약한 상부, 벙커 등의 총안구를 정확하게 때릴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러시아군은 재블린이 전차 상부를 타격해도 생존할 수 있도록 포탑 상부에 철제 구조물까지 설치했지만 재블린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길이는 1.5m, 최대 사거리는 2.5㎞(차량 탑재형은 4.7㎞)로 전체 무게는 22.3㎏(탄이 들어 있는 튜브 무게는 15.9㎏)이다. 60~80㎝ 두께의 장갑을 관통할 수 있다.
1발당 가격은 9000만~1억원 수준이다. 이 미사일로 파괴된 러시아 전차들은 대당 30억~40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무부는 재블린 미사일을 포함해 대공시스템·방탄복 등 3억5000만달러(약 4216억원) 규모의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추가 지원할 계획이다. 미군은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등에서 재블린 미사일을 전차·장갑차·차량 외에도 적 벙커, 알 카에다가 숨어 있는 건물 등을 공격하는 데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주한 미 2사단도 재블린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성경 속 성녀인 막달라 마리아가 재블린 미사일을 안고 있는 사진을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공유하며 ‘정의를 믿고 함께한다면 우리는 극복할 수 있다’는 등의 문구를 게재하고 있다고 한다.
재블린 미사일이 주목받으면서 ‘한국판 재블린’인 현궁 미사일도 온라인 등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현궁은 재블린과 같은 ‘발사 후 망각’ 방식의 미사일이다. 최대 사거리도 2.5㎞로 비슷하다. 하지만 재블린보다 가볍고 정확도와 관통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궁의 무게는 미사일과 발사관을 합쳐 13㎏가량이다. 최대 90㎝ 두께의 장갑을 관통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발당 가격은 1억원가량으로 재블린과 비슷하다. 현궁은 사우디아라비아에 1조원어치가 은밀히 수출됐지만 후티 반군과의 교전에서 차량, 오토바이 등을 명중하는 영상이 소셜미디어로 퍼지면서 수출 사실이 공개됐다. 실전에서 입증된 성능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는 물론 다른 중동지역 국가들도 현궁 도입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처참하게 파괴된 러시아군 전차. 우크라이나군의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 등에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photo 우크라이나 SNS
대전차 미사일 맹활약
영국이 지원한 차세대 경대전차 무기 NLAW(Next generation Light Anti-tank Weapon)도 러시아 전차 등을 저지하는 데 활약하고 있다. NLAW는 영국과 스웨덴이 공동 개발해 2009년부터 실전배치한 1회용 단거리 대전차 미사일이다. 최대 800m 떨어진 적 전차를 격파할 수 있으며 장갑 관통능력은 50㎝가량이다. ‘예측 시선유도’라는 독특한 유도방식을 사용한다. 사수가 조준경으로 목표물을 조준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목표물의 위치를 예상해 미사일에 입력한 뒤 날아가는 방식이다. 길이는 1.02m, 무게는 11.6㎏(미사일 포함)이다.
이 밖에 스팅어 휴대용 대공미사일, 터키제 무인공격기 TB2 바이락타르 등도 러시아군의 발목을 잡고 있는 무기들로 꼽힌다. 스팅어는 보병이 어깨 위에 올려놓고 쏠 수 있는 단거리 휴대용 대공미사일이다.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전에서 반군이 소련군 항공기들을 격추하는 데 위력을 발휘해 유명해졌다. 미 레이시온사가 개발해 1981년부터 실전배치됐다. 최대 음속의 2.2배(마하 2.2) 속도로 최대 4.8㎞ 떨어진 항공기를 격추할 수 있다.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최신예 공격헬기인 KA-52를 사실상 격추, 비상착륙시킨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널리 퍼져 다시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됐다. 러시아군의 KA-52 외에도 MI-8 등 각종 헬기, SU-25 공격기 등을 격추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팅어는 1981년 이후 지금까지 총 270대의 각종 항공기를 격추했다고 한다.
터키제 바이락타르 무인기는 러시아군 대공차량 등을 미사일로 격파하는 영상이 공개돼 화제가 됐다.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의 바이락타르 무인기가 아르메니아의 전차, 장갑차, 차량 등을 파괴하는 영상이 공개돼 ‘스타 무기’가 됐다. 바이락타르는 길이 6.5m, 날개폭 12m로 150㎏의 무장을 실을 수 있고 최대 27시간 비행이 가능하다. 터키제 대전차 미사일과 70㎜ 로켓 등을 장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군 휴대용 미사일들의 활약이 우리에게 ‘강 건너 불’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북한군도 AT-4 대전차 미사일, 신형 탠덤 탄두를 갖춘 RPG-7 대전차 로켓, SA-16 휴대용 대공미사일 등을 보병은 물론 각종 장갑차량에 대대적으로 배치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군 소식통은 “북한의 휴대용 무기들도 유사시 우리 전차와 장갑차, 헬기, 저공비행 항공기 등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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