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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68 "영혼을 위한 닭다리 스프"

김유식 2010.06.21 09:31:44
조회 10083 추천 5 댓글 47


  12월 6일 일요일


  간이 목욕(?)과 빨래를 해야 하는 날인데 날씨가 쌀쌀하니 귀찮다. 아침식사로 연두부와 아욱국을 먹고 빨래를 할까 하다가 오후에 창헌이에게 뜨거운 물을 받아서 하려고 참았다. 대신 누워서 뒹굴 거리며 ‘십팔사략’ 6권을 읽었다. 오전 10시부터는 두식이와 그랜드 십자말풀이를 했다. 가로, 세로 문제가 거의 500개에 달하는 대형퍼즐이다. 창헌이의 여자친구가 퍼즐잡지를 네 권이나 넣어줘서 방 죄수들이 퍼즐 풀이에 여념이 없다.


  창헌이가 창살로 오더니 내게 빨랫감이 없느냐고 묻는다. 잘 됐다 싶어서 입으로는 별로 없다고 말하고는 속옷 두 개,  티셔츠 두 벌, 파자마를 낼름 줘버렸다. 빨래는 헹구는 것하고 짜는 것이 힘든데 소지간에는 꼬마 탈수기가 한대 있어서 짜는 것이 수월하다. 손으로 짜면 아무리 힘주어 짜도 방에 널어놓으면 물이 뚝뚝 떨어지기 때문에 화장실에 있는 창살 밖에다 하루 널어놓고 다시 꺼내어 방에다 널곤 했는데 탈수기로 짜면 그대로 방에 널어놓을 수 있다.


  점심시간에는 7방 봉사원 김두형 사장이 김치찌개를 만들어 보내줬다. 김치찌개는 방마다 서로 만드는 방법이 다르다. 7방은 앞서 말했다시피 경제누범방이다. 김두형과 다른 한 명의 죄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피골이 상접한 가난한 죄수들만 있다. 김두형을 빼면 거의 접견 오는 사람도 없고, 영치금이 있는 사람도 없다. 김두형은 그들을 위해서 초강력지방보급용 김치찌개를 만들었다. 나중에 자신의 말로는 김치찌개가 아니라 “영혼을 위한 닭다리 스프”라고 했다.


  이 찌개는 닭다리를 많이 넣어서 기름이 둥실둥실 뜨는데다가 국물을 내는데 물 대신 콜라를 썼다. 다른 방에서는 지방이 많은 닭 껍질은 찌개에 넣지 않는다. 순살코기만 뜯어서 만든다. 그러나 7방의 방식은 특이했다. 찌개 상단에 떠 있는 기름의 양이 결코 적지 않다. 한 대접만 먹어도 1,000Kcal을 쉽게 넘길 만한 고열량식이다. 맛을 살짝 보았더니 삼겹살 구울 때 나오는 기름과 콜라를 1:1로 섞은 미묘한 맛이 났다. 김두형 사장은 이것을 대량으로 만들어 2방과 4방, 5방에 나누어 주었다. 2방은 사형수가 있으므로 사형수에 대한 예의 차원이고, 4방에는 평소 김두형과 운동장을 같이 뛰는 친한 경제사범이 있다. 5방은 나와 창헌이와의 친분 때문이다.


  맛은 없지만 그래도 만든 성의가 있으니 안에 든 구운 계란 두 개하고 떡갈비 한쪽으로 대충 점심을 때웠다. 얼마 먹지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입 안이 미끌미끌하다. 식사 후 창헌이가 뜨거운 물을 줘서 머리를 감고 빨아준 빨래를 널었다. 평소 오전에는 내내 자기만 하던 두식이도 오늘은 십자말풀이에 빠져 있다. 십자말풀이 외에도 최근 우리 방에서는 장기도 인기다. 장기는 주로 두식이와 장오가 두는 데 장오는 완전히 길만 아는 수준이라 매번 두식이에게 딱밤을 맞았다.


  오후에는 할 일이 없으니 또 잠이 들었다. 많이 자는 것 같기는 한데 징역살이에서는 자는 게 제일 시간이 잘 가는 법이다. 누구는 공부도 한다고는 하지만 독거실이 아닌 이상 조용히 공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번에는 꽤 오랜 시간 잠이 든 듯. 깨어보니 오후 4시다.


  일요일도 점검이 빠르니까 미리 점검 마치고 배식 준비까지 하는데 두식이와 장오가 계속 장기를 두다가 조선생한테 혼났다. 다혈질 조선생은 큰일이 아닌데도 빨리 장기판을 치우지 않는다고 벼락같은 호통을 쳐서 두식이와 장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오늘 저녁에는 이번 달부터 처음 나오는 단무지 무침이 있다. 단무지를 고춧가루에 버무린 것인데 학창시절에 본 이후로 거의 20년 만에 보는 것 같다. 두식이는 예전에 인천의 한 경찰서 유치장에 있었을 때 관식 반찬으로 먹은 적이 있었다고 했다. 두식이는 이번 서울구치소에 들어오기 전에는 수서 경찰서 유치장에 있었는데 그때는 단무지 무침이 아니라 그냥 단무지였단다. 소고기 미역국과 겉절이, 감자조림도 나왔는데 연두부와 미역 건더기를 먹고 단무지 무침을 두 조각 먹어보았는데 입이 민감해졌는지 강한 단맛과 조미료 맛에 미간이 좁혀진다. 이재헌 사장이 먹고 있는 라면 국물도 한 수저 떠먹어봤더니 아주 짠맛과 강한 MSG 맛이 혀를 자극했다. 여기서 계속 싱겁게 먹다 보니 입맛이 변했나보다.


  저녁 식사 후 커피를 마시고 이번에는 이재헌 사장과 두식이의 장기 대결을 구경하며 훈수를 두었다. 장기실력은 나와 이재헌 사장이 비슷한 것 같고 그 밑으로 두식이, 제일 아래에 장오가 있다. 창헌이는 김천 소년교도소에서 익힌 실력이 출중했다. 아마 객관적으로는 창헌이의 실력이 가장 높을 듯.


  TV에서는 ‘남자의 자격’을 해주는데 별로 재미는 없어서 계속 ‘십팔사략’과 신문을 읽었다. 출력 나갔던 창헌이가 들어와서 장오에게 딱밤 맞기 장기를 제안했다. 장오가 실력이 안 된다고 자꾸 피해서 창헌이가 차와 포를 떼어 주고 했는데도 두 번 연속 져서 딱밤을 열 대나 맞았다. 창헌이는 김천 소년교도소에서 장기만 배운 것이 아니다. 딱밤 때리기 신공도 배웠다. 예전 박경헌이 맞을 때는 방바닥을 구르면서 살살 때려 달라고 애걸복걸했는데 장오는 아파하면서도 뚝심으로 참아냈다.


  저녁 뉴스를 보니 오늘 아침 온도가 영하 6도였다는데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안에서는 그렇게 춥지 않다. 창문만 열지 않으면 방바닥이 따끈해서 파자마 또는 팬티 한 장 만으로도 버틸 만 하다. 며칠후부터는 다시 추위가 풀린다고 하니 다행이다. 다음 주 화요일에는 첫 출정이 있는데 잘 되었으면 좋겠다. 수요일에는 두식이의 출소일이다. 다음 주에는 제발 일이 다 깨끗하게 풀리기를 바란다.



  12월 7일 월요일.


  오늘로서 구속된 지 딱 두 달이다. 날수로 치면 60일. ㅠㅠ 간밤에 다리가 저린듯해 계속 깨고 말았다. 새벽 2시가 가까워서 잠이 든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다리가 저린 것은 아닌데 다리를 쭉 펴고 누우면 1분도 안 되어서 뭔가 불편해진다. 접으면 괜찮다가도 다시 펴면 어딘가 편하지 않았다. 과도한 다이어트 때문인 것 같기도 하지만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기상 후 연두부와 어묵국, 깐마늘무침으로 식사를 마치고 씻으려니 뜨거운 물이 남는다. 미니 샤워(?)를 하고 ‘십팔사략’ 8권을 들고 누웠다. 점검 전에 교도관이 내 이름을 부르기에 변호사가 왔나 보다 했더니 동생 이름이 적혀있다. 12중 사동 앞으로 나갔는데 16중 사동 문 앞에 신입방에서 같이 생활했던 영웅이가 나와 있다. 영웅은 신입방에서 5상으로 갔었는데 건달들하고 몇 번 싸우고 이쪽으로 전방 왔단다. 그간 안보이기에 출소했나 했더니 추가가 떠서 4개월을 더 받았다고 했다. 처음 영웅이가 받았던 형량은 징역 8월. 그리고 폭력사건이 하나 늘어나서 징역 4월 추가. 모두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신입방에서 각자 전방 갈 때 영웅이에게 제발 다른 사람들하고 싸우지 말라고 당부 했었는데 그것은 역시 잘 지켜지지 않았다. 모두 두 번 싸워서 두 번 징벌을 갔었고, 전방도 두 번이나 이뤄졌다. 처음 전방 갔었던 방에서는 오십대의 건달 두목과 그 두목의 징역을 수발하려고 들어온 꼬붕 건달 한 명, 그리고 건달 두목 편을 드는 같은 지역의 건달 한 명 등 모두 세 명을 패는 바람에 징벌을 먹고 전방을 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내가, “좀 참지 그랬냐?”고 물으니 처음에는 참을 수 있을 만큼 참으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을 괴롭히는 것 같아서 주먹을 안 쓸 수가 없는 상태였다고 변명한다.


  - 계속 -

 세 줄 요약.

1. 7방 김두형 사장이 "영혼을 위한 닭다리 스프"를 만들어 줬다.
2. 장오는 장기를 잘 못 둔다.
3. 접견 가다가 영웅이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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