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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18 "장오의 취직"

김유식 2010.09.01 16:07:23
조회 10866 추천 6 댓글 33


  1월 24일. 일요일.


  새벽에 얼굴에 대량의 침을 맞고 깼다. 마주 보고 자던 목포 김 회장이 내 얼굴에 대고 재채기를 사정없이 크게 해서 깨고 말았다. 이건 뭐 사거리업에 공3업 히드라의 공격과 다를 바 없다. 손으로 얼굴을 문질러 닦았더니 손이 끈끈하다. 원래 내 옆은 장오가 자던 자리였는데 장오의 콧바람이 너무 세서 아래로 내려 보내고 그 대신 목포 김 회장이 올라왔는데 그 탓에 이런 봉변을 당했다.


  식사 후 오전 점검을 마치고 오래된 ‘에스콰이어’ 잡지를 읽다가 오후에 만들려고 했던 케이크를 오전부터 서둘렀다. 크리스마스 때 만들었던 케이크와 같은 거다. ‘가나파이’ 12개를 부숴서 마시멜로만 떼어내고 잘게 가루를 낸 다음 ‘꽈배기 도너츠’도 찢어 넣고 땅콩과 콘푸라이트는 가루로 만들고, 요구르트 푸딩으로 휘휘저어 만드는 케이크다. 뭐 명분이야 장오가 수요일에 출소하니까 그 기념이라고는 하지만 어쩌면 나도 목요일에 출소할지 모르니까 마지막으로 만들어 본다는 의도가 있었다.


  땅콩가루까지 솔솔 예쁘게 뿌려서 첫 번째로 만든 것은 7방의 김두형 사장과 진모 씨에게로 보냈고, 두 번째 것은 뚱뚱 소지에게 줬다. 세 번째 것은 우리 방에서 먹을 케이크다.  만드는 동안에 뚱뚱 소지가 삶은 계란을 가져다 줘서 두 개를 먹었는데 나는 케이크를 만드느라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있어서 계란은 장오가 까서 소금을 찍어 내 입에 넣어줬다.


   TV “생활의 달인”을 보면서 케이크를 3개나 만드니 오전 시간이 다갔다. 점심 배식 전에 7방에서 떡갈비와 훈제닭, 김과 고추장 등을 버무려 만든 무침을 라면 용기에 담아 보내왔다. 케이크 보낸 것에 대한 답례인가보다. 점심으로는 카레 안에 들어있던 양배추를 집어먹고 된장국도 떠먹었다.


  일요일은 평일보다 배식이나 점검이 좀 이른 편이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교도관이 목포 김 회장에게 식후 약을 가져다주니 김 회장은 “밥도 다 안 먹었는데 약을 준다.”며 투덜거린다. 참으로 이상한 성격이다. 식사를 마치고 약을 먹으면 될 일인데 미리 받았다고 투덜거리다니. 식사 후에 관약을 조금만 늦게 줘도 교도관을 불러대며 닦달을 해대면서 오늘은 조금 일찍 줬다고 궁시렁이다. 내가 한마디 했더니 다들 맞장구를 치면서 농담을 섞어 김 회장에게 한마디씩 쓴 소리를 했다.


  오늘은 “전국노래자랑”이 녹화상태가 좋지 않다며 “가요무대”를 보여줬는데 홍콩가수 등려군의 “야래향” 노래가 나왔다. 2001년도에 홍콩에서 촬영하던 인터넷 방송에서 아내가 설명하던 중에 나왔던 배경음악이라 옛 생각이 났다. 그때는 참으로 꿈에 부풀어 있던 삼십대 초반의 젊은이였는데 지금은 칙칙한 죄수복을 입고 수형 생활을 하고 있다. 어흐흑!


  식사 후에는 뚱뚱 소지로부터 뜨거운 물을 많이 받았다. 물통, 쓰레기통, 탕반기 2개, 잡수통까지 받아서 1주일간의 빨래도 하고, 머리도 감고, 미니목욕도 했다. 아이구 시원해라~


  오후 3시 넘어서는 누워서 잠이 들었다가 오후 점검 준비 때문에 깼다. 저녁 배식 전에 뚱뚱 소지가 김치찌개를 또 세 그릇이나 가져다줬다. 같이 일하던 창헌이가 우리 방에 들어와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에 계속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수요일에 출소할 것이 확실한 장오는 마음이 심란하다. 출소해도 갈 곳이 없는 것이다. 돈도 없다. 말로는 아직 훔쳐서 숨겨놓은 자전거가 몇 대 있다고는 하지만 그게 아직까지 온전히 있을 지도 의문이다. 이재헌 사장이 꾀를 냈다.


  “장오야. 니 교화지원금 받는 거 있지 않나?”


  “네. 있죠.”


  “그라믄 그 돈 갖고 해장국 하나 사 묵고, 인덕원 사거리의 PC방으로 가서 밤새고, 아니면 찜질방 가서 자고 다음 날 정오쯤에 다시 구치소로 온나.”


  “그러면요?”


  “그날 김 대표님 출소하실 텐데 니 보면 다만 얼마라도 주시지 않겠나?”


  “그래요?”


  장오는 대답하면서 나를 쳐다본다. 이재헌 사장이 물었다.


  “안 그렇습니꺼? 우리 장오 며칠 자고 밥 묵을 돈 뭐 얼마 되겠습니꺼?”


  “그렇죠.”


  내가 대답했다. 나도 출소를 한다는데 뭐가 아까우랴. 내가 이어서 말했다.


  “장오야. 영치금 남은 거 줄 테니 다음 날 와서 기다려라.”


  창헌이는 한술 더 떴다.


  “장오. 씨발놈. 그냥 기다리면 김 대표님이 밥 값 안 주신다. 너 교화지원금 2만 원 받은 걸로 딴 짓하지 말고 현수막 하나 그려 와서 구치소 정문에 매달아라. [축! 김 대표님 출소!] 써 갖고. 알았냐? 씨발놈아!”


  그러나 이 이야기를 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장오의 직업이 구해졌다. 4방의 봉사원인 추 사장 와이프가 목포에서 성인 PC방을 하는데 장오를 데려다 쓰기로 한 것이다. 장오는 온라인 게임밖에 모르고 딱히 갈 곳도 없으므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월급까지 주겠다는 추 사장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장오는 교화지원금으로 받은 2만 원밖에 없는데 어떻게 목포까지 가느냐고 걱정스럽게 묻자 추 사장은 다음 주 수요일의 선고 날에 자신의 동생을 보내서 목포까지 가는 KTX 표를 주기로 했단다. 장오는 신났는지 취침 시간에 4방을 보면서 큰 소리로 인사했다.


  “4방 추 사장 형님! 안녕히 주무십시오.”


  '개그 콘서트‘를 보면서 편지를 정리하는데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과연 나는 다음 주에 출소할 수 있을 것인가?


  법정에 들어갈 때는 보통 수갑을 차지 않는다. 포승도 풀어 준다. 1심 선고 공판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항소심의 선고 공판은 다르다. 수갑과 포승을 다 한 채로 법정에 들어간다. 선고가 빨리빨리 이뤄지기 때문인 것도 있고, 어차피 항소심에서 풀려나오는 사람이 극히 적은 관계로 풀었다가 다시 묶기에는 교도관들이 귀찮아하는 것도 있다. 공식적으로는 시간이 부족해서라는 핑계를 대는 것 같지만 사실심(事實審)은 항소심까지고 상고를 하게 되면 대법원은 서류로서만 검토를 하기 때문에 피고인이 법정이 갈 일이 없다. 따라서 항소심의 선고공판에서는 형이 확정되는 자리라고 보면 된다. 이 때문에 피고인의 난동을 막기 위해서 수갑과 포승을 해둔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일전에 4방의 헌수로부터 항소심에서 난동을 부린 피고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9상에 있었던 목포 김 회장의 말을 빌자면, “재북”이라는 이름을 가진 9상의 한 사형수는 1심에서 15년 형을 받고 항소심에서 형량이 줄어들 것을 기대하고 있다가 기각 당하자 역시 판사들에게 의자를 던지면서 난동을 부렸다고 했다. 이때 배석판사들은 급히 피했으나 다리를 절던 재판장은 의자에 맞았다. 이어진 재심에서 법정모독죄와 살인미수가 추가되어 결국 그 죄수는 법정최고형인 사형을 선고 받았다고 했다.


  ‘1박 2일’을 보면서 편지 정리를 했다. 오후 8시부터는 ‘개그 콘서트’를 보았지만 선고공판 때문에 도무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 계속 -
 


  세 줄 요약.

1. 자다가 침을 맞았다.
2. 케이크를 만들었다.
3. 장오가 갈 곳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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