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컬럼입니다. ---------------
최근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이 뜨겁게 일고 있다. 부끄럽지만 필자도 8년 전인 ‘96년에 국보법상의 북한 고무, 찬양의 죄목으로 긴급구속을 당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필자가 운동권 출신의 민주화 투사였다거나 아니면 북한의 지령을 받고 활동했던 고정 간첩이라는 건 아니다.
오히려 노느라 바빴던 20대 중반의 시기라 북한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다. 단지 PC통신 게시판에 ’96년 8월의 강릉잠수함 사건을 두고 어딘가 수상하다고 썼을 뿐이었다. 수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우리 측 희생자가 나오고 나서부터는 그 생각이 바뀌었다. 게시물을 쓴 시점은 8월이었는데 구속을 당한 것은 11월이다. 구속된 후 알았지만 수사원들은 약 석 달간 필자를 미행하고 뒤를 캐고 다녔다.
당시 필자는 매일매일 술 마시러 다니는 음주동호회의 회원으로 아주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오후 7시쯤 집을 나와서 8시에는 종로 피맛골에서 한 잔하고, 근처 다른 곳으로 2차를 갔다가 새벽이 되면 노래방에 들렀다. 그리고 새벽 2시 경에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야말로 성실한 백수 생활이었다.
필자를 담당하던 수사관은 취조 중에 이렇게 말했다.
“야! 너 같이 미행하기 쉬운 새끼가 세상에 어디 있냐? 중간에 잃어버려도 피맛골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귀신 같이 나타나더라.”
“헉. 절 미행했었나요?”
“인마. 너희들 매일 모여서 작당하고 있기에 고정간첩인 줄 알았더니 음란물이나 주고받고 쯧쯧...”
“허걱. 그걸 어떻게?”
그 당시는 지금처럼 초고속인터넷을 쓰던 시절이 아니라 음란물은 주로 CD로 구워 돌려보는 것이 백수들의 기본 관람 패턴이었는데 수사관들은 처음에 CD를 보고 중요한 정보가 오고가는 줄 알았다고 했다.
필자도 실망이 대단했다. 뭔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대공수사를 하는 줄 알았더니 그런 건 아니었다. 술 마시러 다니는 백수들을 고첩인 줄 알았을 정도라면 진짜 간첩들은 날아다닐 판이었다.
결국 두 눈을 가린 채로 서울시내 모 대공분실로 끌려간 필자는 수십 장의 자술서와 반복된 자백 강요를 받아야만 했다. 필자가 조사 받으면서 제일 답답했던 것은 수사관들이 있지도 않은 나의 성향을 찾아내겠다고 눈을 부릅뜨며 윽박지르던 것이다.
영화 “이중간첩”을 보면 “동백림” 사건처럼 반복되는 주입식 질문에 나중에는 그냥 간첩으로 둔갑하는 학생의 이야기가 나온다. 필자는 간첩이 아니었기에 아무리 반복 질문을 해대도 끄떡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날이 밝도록 계속되는 질문에 새벽녘에는 필자가 스스로 자문하게 됐다.
‘혹시 내가 나도 모르는 빨갱이가 아닐까?’
아마 삼일 정도 더 잠 못 자고 조사받았더라면 반복되는 질문이 지겨워서 간첩이라고 자백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필자는 ‘소명자료 부족’을 이유로 무혐의 석방되기는 했다. 멀쩡한 백수 잡아다 놓고 간첩으로 칠해버리는 국가보안법이 밉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국보법의 완전 철폐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술 마시고 음란물 주고받는 백수를 잡아가는 무식한 짓을 하기는 해도 그나마 최소한의 그런 의지를 가지고 수사하는 사람들이라도 있어야 우리 사회가 중심을 잡고 유지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부분만 뜯어 고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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