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컬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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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일본 유학시절에는 한국의 500원짜리 동전이 일본 자판기에서 그대로 통용되는 일이 있었다. 오래된 자판기는 500원짜리 동전을 500엔으로 인식했는데 당시 110엔짜리 캔 음료수를 뽑으면 음료수와 함께 390엔의 동전이 쏟아졌다. 그때 환율로 따지자면 100엔이 약 800원 정도였으므로 500원을 투자하면 음료수와 함께 3,000원 정도의 현금을 쥘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500원이 인식되는 오래된 자판기 찾기가 쉽지 않았고 이마저도 가난한 한국인 유학생들이 휩쓸고 지나가고 나면 “동전 없음”이라는 표시에 불이 들어올 때가 많았다.
곧이어 신형 자판기에서도 500원짜리 동전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는데 이는 동전 표면에 소형 드릴을 이용해서 동전을 완전히 뚫지 않고 세 개 정도의 홈을 만들면 가능했다. 한국의 500원짜리 동전은 8g이고 일본의 500엔짜리 동전은 7g으로 한국의 동전보다 약간 가벼웠기 때문에 이렇게 홈을 파면 일본 자판기들도 한국 동전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390엔의 거스름돈을 토해냈다.
어떤 자판기는 500원 동전을 넣은 후 음료수를 뽑지 않고 그냥 취소 버튼을 누르면 쌓여있던 동전들 중에서 밑의 것부터 나오는 바람에 500엔 동전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어서 잘만하면 500원 투자하고 500엔을 벌 수 있던 그야말로 획기적인(?) 벌이였다. 많은 유학생들이 여기에 달라붙자 한때 한국의 한 유학생이 500원 동전을 수천 개씩 가져오다 일본 세관에 적발되는 등 웃지 못 할 사건도 생겨났다. 이 “돈 내고 돈 먹는” 멋진 돈벌이는 몇 달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자판기들이 500엔 동전의 사용을 금지했고 얼마 후 7.2g의 변형된 500엔짜리 동전이 나오면서 끝나게 됐다.
일본 유학시절 필자는 그야말로 거지 +구두쇠였다. 이삿짐 나르기, 지하철 노가다, 접시닦이, 택배 등등 여러 일을 하면서도 한 푼이라도 주울까 싶어 내내 땅만 보고 걸어 다녔다. 또 하루에 한 끼니는 언제나 가장 저렴한 120엔짜리 가께 우동을 사 먹었다. 가께 우동은 면 외에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는 우동인데 필자 말고는 이 우동을 먹는 사람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모두들 커다란 튀김이나 보기에도 침이 꿀떡 넘어가는 큼직한 유부나 계란을 얹어 먹었다. 튀김과 유부, 계란을 모두 넣은 고급 우동은 320엔의 비싼 가격이었는데 가난한 고학생으로서는 그림의 떡이요, 모니터 안의 레이싱 걸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께 우동의 면을 다 건져먹고 국물을 후루룩 마시던 필자의 입 안에 금속의 이물질이 걸렸다. 이도 뽑힐 듯이 아파서 급히 손바닥에 뱉어냈는데 헉! 이건 꿈에서나 그리던 500엔짜리 고액 동전이 아니던가? 우동가게 주인에게 항의할 생각은커녕 우동국물이 잔뜩 묻은 그 동전을 황급히 주머니 속에 쑤셔 넣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남은 우동 국물을 홀딱 마시고 나왔다.
이게 웬 떡이냐? 120엔짜리 우동을 먹었는데 500엔을 벌다니! 내일은 무조건 튀김과 유부, 계란이 들은 우동이다! 우동 가게에서 집까지는 약 300미터 거리였는데 날듯이 뛰어왔다. 발걸음도 가벼웠지만 혹시라도 뒤에서 누가 부를까봐 무섭기도 했다. 집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동전을 꺼냈다. 그런데 헉! 이건 웬 학이냐? 당연히 오동나무 그림이 있어야 할 동전에 학이 날고 있는 게 아닌가? 눈을 까뒤집고 몇 번을 확인해 봐도 한국의 500원짜리 동전이었다. 털썩 주저앉은 필자가 어찌나 상심했던지 그날 저녁 꿈에 커다란 튀김 우동이 등장했다.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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