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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영구네집 이야기 19

김유식 2005.07.12 00:00:00
조회 12448 추천 7 댓글 32


  4월 23일. 10일째. 수요일

  사방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저녁밥이 기다리고 있었다. 방안 공기가 조금 이상해서 둘러보니 신입이 한명 들어와 있었는데 약간 머리가 벗겨진 20대 후반의 사람이었다. 다들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는 것이 뭔가 수상했지만 물어 보지는 않고 말없이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짬처리를 하고 나니 봉사원 아저씨가 신입식을 하자고 한다. 신입은 역시 음반법으로 들어왔고 부산에서 압송되어 왔다고 한다. 나이는 31살로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직업은 삼보컴퓨터에서 A/S 맨으로 일하다가 아내가 도서대여점을 하기에 그만두고 그것을 도와주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잡혀 온 경위는 아주 간단했다. 통신망을 통해서 "이웃집의 토토로" 등 일본 만화 영화 비디오 테이프를 40여 만원 어치 판매하다가 검찰 수사관이 집으로 급습했는데 마침 집에는 자신이 보던 포르노 테이프도 있어서 결국 음란죄로 구속됐다. 아무리 자신이 집에서만 보던 것이라고 말해 보아도 수사관들에게 먹혀들 리가 없었다. 판매한 비디오 테이프는 모두 "미야자키 하야오" 의 만화 영화 비디오였지만 통장 입금 내역에는 그런 것이 나와있을 턱이 없고, 몇 달간 통장으로 입금된 금액이 40여 만원에다가 집에서 포르노 비디오 테이프가 발견되었으니 영락없이 음란 비디오 판매업자가 된 것이다. 40여 만원의 입금 내역에도 친구들에게 빌려주었다가 받은 돈 등 판매와는 상관없는 입금액이 30여 만원이라 하니 신입의 말 대로라면 만화 영화 비디오 테이프 서너 개를 10만원 정도 어치 잘못 팔았다가 구속된 케이스였다.

  이번 비디오물 일제 수사에서는 경찰이 아닌 검찰이 단독으로 수사하기 때문에 남부지청 수사관들이 전국을 누비며 잡아들였다.

  부산에서는 신입 외에도 하이텔에서 유명한 포르노 테이프 판매자인 이xx 씨도 잡혔는데 이xx 씨는 검찰 수사관이 오기 하루 전날 저녁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음란 비디오 테이프 2,000여개를 부산 앞바다에 버렸지만 압수된 LD 플레이어와 비디오 플레이어 등 10대를 증거 삼아 구속되어 같이 올라왔다고 한다.

  서울로 압송해 오는 도중 머리가 벗겨진 수사관이 이xx 씨에게 말을 건넸다고 한다.

  "당신 이거 모두 갖고 올라가면 죄가 무거워지니깐 압수된 비디오는 다섯 대로만 하지?"

  "네?"

  "비디오 기기 열 대 가지고 복제하고 판매한 거니 죄가 무겁잖아. 그러니깐 다섯 대는 없던 걸로 해. 알았지?"

  "......"

  "왜 말이 없어? 이거 나 좋자고 하는 거 아니야! 당신 죄가 무거워질까봐 하는 거지! 당신 실형 살고 싶어?"

  "그럼. 그...그러지요."

  이렇게 해서 고속도로상의 휴게소에서 뒷좌석에 압수한 열대의 비디오기기 중 다섯 대는 다른 수사관 승용차의 트렁크에 옮겨 싣고 왔다고 한다. 이 기기들이 어떻게 되었을 지는 뻔하다.

  이 계장은 당시 담당 검사실에서 근무하던 수사관으로서 꽤나 돈을 밝히게 생겼다 싶었더니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검찰에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남의 위급한 상황을 틈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이런 사람들일수록 큰소리는 많게 마련이다. 내가 검사실에 조사 받으러 갔을 때도 이 계장은 어떤 피의자에게 일장 훈계를 하고 있었는데 "너 같은 놈 때문에 나라가 썩는다." 는둥, "평생 콩밥을 먹여야 한다." 는둥 말이 많았는데 도대체 뒷구멍으로 증거품이나 빼돌리는 주제에 자식 교육은 제대로 시키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새로 들어온 신입은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바로 조서를 작성한 후 영장이 신청됐고 구속영장이 떨어지자 바로 이곳으로 오지 않고 남부지청 건물 안에 있는 대기실에서 다른 피의자들과 같이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리며 기자들이 우르르 들어와서는 사진을 찍고, 인터뷰하려고 마이크를 들이댔다고 한다. 이 신입 역시 가끔씩 TV 뉴스 시간에 보던 방법으로 옷과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수십 명의 기자들이 계속 사진을 찍어 대고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면서 하는 말이,

  "김유식 씨 지금 심정이 어떻습니까?"

  "김유식 씨 총 판매 금액이 얼마나 됩니까?"

  "인터넷에서 어떻게 유통시킨 겁니까?"

  등등 그곳에 있던 피의자들과는 관계없이 나를 찾으며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내가 없었다. 그 시간에 나는 불러뽕을 당한 줄 알고 검사를 원망하며 구치감에서 이상한 교도관 녀석과 이빨을 까던 중이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아마도 검사가 생각하기를 나와 음란물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니 기자 회견하는 자리에 부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많은 기자들이 내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난 후 검사에게 항의했다고 한다.

  "검사님! 약속이 틀리지 않습니까? 김유식이를 불러 주시기로 하셨잖습니까?"

  "이런 피라미들 불러다 놓으면 뭐합니까?"

  피의자들 중 한 사람이 "피라미" 라는 말에 발끈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이거 너무하는거 아닙니까? 피라미라뇨? 인권모독입니다! 우리도 팔 만큼 팔았어요!" 라고 항의했다가 검사의 "앉아!" 라는 말 한마디에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고 했다. 그후 신입은 이곳으로 들어왔다.

  내가 방에 들어오면서 느꼈던 방의 이상한 기류는 바로 이 이야기 때문이었다. 내가 오기전 신입은 위의 이야기를 이미 한 번 했던 것. 그래서 모두들 나에 대한 죄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봉사원이 신입에게 말한다.

  "자네 김유식이가 누군지 알어?"

  "누굽니꺼? 기자들이 찾던데 저는 누군지 모르겠심니더."

  "거기 자네 옆에 앉아 있는 친구야."

  신입은 지금까지 떠들던 이야기의 주인공이 옆에서 듣고 있었으니 아주 당황스러워하면서 악수를 청한다.

  "그 유명한 분이십니꺼? 만나서 반갑습니데이."

  "....."

  도대체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작 엄청난 일은 다음날 아침에 터졌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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