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5 "박경헌"

김유식 2010.04.02 12:22:23
조회 16382 추천 6 댓글 48


  고무신을 질질 끌고 복도를 걸어가는 박경헌의 뒷모습을 보다가 조 선생의 손짓에 눈길이 갔다. 조 선생은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을 하나 내밀고는 박경헌이 사라진 쪽을 가리켰다가 다시 자신의 머리 오른쪽으로 올려서 빙글빙글 돌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말은 한마디도 안 했다. 좀 장황하게 설명한 것 같지만 한마디로 ‘저 놈 또라이 아니냐?’ 라는 뜻의 제스처다.


  방 안의 세력분포와 피아구분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게 동의를 구하고 있는 조 선생의 손짓을 마냥 거부할 수도 없다. 이럴 때는 중간만 가는 것이 현명하다.


  “저 분 참 특이한 분이시네요.”


  내가 말하자 조 선생이 기다리기 답답했다는 듯이 말을 꺼내 놓았다.


  “저 사람 좀 또라이 같은데?”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흥미가 있다는 듯이 물어야 한다. 내가 가학수사에 참여하는 코갤러들의 모습처럼 관심어린 눈빛을 보였다.


  “아! 간밤에 말야. 갑자기 일어나더니 배고프다면서 바구니에서 닭다리를 꺼내서 저기서 벽보고 앉아서 먹잖아.”


  조 선생의 손가락이 이번에는 화장실 쪽 벽을 가리켰다.


  안훈도 사장이 끼어든다.


  “저도 들은 것 같아요. 새벽녘에 우걱우걱 소리가 났었어요.”


  “그래요?”


  나는 너무 깊이 잠들어서 못 들었나 보다.


  조 선생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좀 모자란 사람 아닌가? 내가 한 소리 하려다 말았네.”


  구치소, 교도소에는 진공 포장된 훈제닭고기를 판다. 가슴살이나 다리살을 훈연해서 파는데 구치소 내 가장 인기 높은 먹거리 중 하나다. 가격은 1,580원. 보통은 ‘닭다리’ 아니면 ‘훈제닭’으로 통했다.


  새벽에 닭다리 뜯는 게 뭐 문제인가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 하실 꼬꼬마 독자들도 계실 듯하다. 집에서야 아무 문제없지만 구치소 내에서 “저 놈이 새벽에 자다말고 벽보며 닭다리 뜯어 먹고 다시 잤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참으로 개새끼네요.” 라는 답이 돌아올 만 하다. 구치소 내에서는 가급적 튀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방 안 죄수들의 동의나 암묵적 동의를 구하고 행동하는 것이 신상에 유리하다. 대낮에 혼자 뜯어 먹어도 욕먹을 판에 이불 다 깔아놓고 있는 와중에 자다 말고 닭을 뜯어먹고 다시 잤으니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욕이 나올 만도 하다. 게다가 그 닭다리는 박경헌의 것도 아니었다. 안훈도 사장이 가져온 것이다.


  박경헌이 돌아오니 철문이 열리기 전부터 말이 쏟아진다.


  “아 씨발! 삼촌 좀 합의 해 주지! 아 씨발”


  묻지도 않았는데 철문이 열리면서부터 말이 줄줄 나온다.


  “아~ 제가요. 사기 금액이 1억 원인데 삼촌이 건설회사를 하시거든요. 삼촌 돈 많이 있는데 그거 갚아주면 합의보고 바로 나갈 수 있는데 안 준다는 거예요!”


  나와 조 선생, 안훈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삼촌이 변호사한테 알아봤는데 보통 사기는 천만 원에 1개월씩 산대요. 1억 원이면 징역 10월이나 1년 정도 나올 거라는데 그냥 그거 살고 나오면 작은 복덕방 하나 차려준다고 하네요. 그래서 공인중개사 책이나 좀 넣어 달라고 했어요. 그거 읽고 자격증 따면 나가서 복덕방이나 해야지.”


  혼자 떠들면서 자리에 앉으며 나를 쳐다본다.


  “김 대표님~ 회사는 어떻게 빼앗는 겁니까? 삼촌 회사 몰래 팔아먹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줄 알아야죠. 김 대표님은 회사 해 보셔서 그런 거 잘 알지 않습니까? 코스닥도 해보신 분이니.”


  “네?”


  “삼촌 회사가 그래도 중견 건설회사니까 제가 좀 팔아먹어서 돈 좀 만들어 보고 싶어서요.”


  “........”


  이럴 때는 대답을 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내가 더 말이 없자 혼자 죄가 없다는 타령을 하면서 다시 일어나 쇠창살을 붙잡고 크지 않은 목소리로 떠든다.


  “나 좀 내보내 줘! 난 죄 없어! 사랑했는데 돈 좀 받아쓴 게 무슨 죄야! 내 보내 줘!”


  저 사람이 과연 19년간이나 공무원 생활을 했던 것이 맞는지 의아했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어서 점검을 받고 저녁을 먹었다. 식사는 소지들이 마차에 싣고 다니면서 각 방마다 있는 밥통, 국통에 밥과 국을 담아서 배식구를 통해 준다. 반찬은 그릇을 복도 쪽 창살에 올려두면 그것을 소지가 가져가서 반찬을 담아 역시 배식구로 넣어준다. 방에서는 배식 담당 죄수 두 명이 밥과 국을 식기에 덜어 나눠준다. 플라스틱으로 된 가로 25cm, 세로 35cm 정도의 크기인 밥통, 국통은 보통 ‘탕반기’라고 부른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탕반기에다 잔반을 담아서 배식구에 넣어두면 소지가 그것을 꺼내어 큰 짬통에 넣는다. 보통 ‘짬 처리’라고 하는데 군대에서도 같은 용어를 쓴다. 저녁 식사의 짬처리가 끝나면 더 이상 소지와 부딪힐 일이 없다. 소지는 짬통을 씻고 사방으로 들어간다. 우리 사동에서의 소지 방은 3방이었다.


  짬 처리를 마치고 안훈도가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였다. 혼자 중얼거리던 박경헌은 뭔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피해자인 여자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부산을 떨다가 우표가 없다는 것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소지님! 여기 5방이요!”


  박경헌은 특이하게도 소지에게 ‘소지님’이라고 불렀다. 멀리서 소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요?”


  박경헌은 이유를 대지 않고 다시 외쳤다.


  “소지님! 여기 5방인데 좀 와 봐요!”


  철문을 열고 소지 방인 3방으로 들어가려던 30대 중반의 키 큰 소지가 인상을 구기며 걸어온다.


  “아~ 왜요?”


  “편지를 쓰려는데 우표 얼마짜리 보내야 합니까?”


  조 선생, 안훈도, 내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왜 그걸 귀찮게 소지한테 물을까? 방 안의 사람들도 얼마든지 알 수 있는 내용 아닌가?


  “250원짜리 보내면 갑니다.”


  귀찮다는 듯이 대답하는 소지에게 박경헌이 또 물었다.


  “등기우편은 얼마입니까?”


  “1,750원짜리 하나 보내면 되고 혹시 편지가 양이 많으면 90원짜리 하나 더 붙이세요.”


  박경헌은 발걸음을 돌려 3방으로 가려는 소지의 등에다 대고 또 물으려고 했다. 안훈도가 박경헌을 막으며 “저한테 물어보세요.”라고 말했는데도 박경헌은,


  “편지 양이 많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라고 물어버렸다. 나도 답답해서 안훈도처럼 박경헌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소지는 한 번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창살 근처로 와서 대답했다.


  “편지지가 한 두 장 정도면 그냥 1,750원짜리 붙이시구요. 몇 장 더 들어가면 혹시 모르니까 90원짜리 하나 더 붙이시라구요.”


  소지의 얼굴에는 귀찮은 표정이 역력하게 나타났다.


  “아. 네......”


  그제서야 박경헌이 이해했다는 듯이 몸을 방 안 쪽으로 돌렸다. 소지에게 고맙다는 말도 없었다. 소지는 다시 방 쪽으로 걸음을 떼려 하고 있었다. 갑자기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처럼 박경헌의 뇌리 속에 아주 중요한 것이 떠올랐나보다. 몸이 홱 틀어졌다. 트리플악셀을 펼칠 때의 김연아와 같은 몸놀림이었다. 그리고선 소지의 등에 비도를 꽂는 듯한 질문을 날렸다.


  “저기 소지님! 저 다른 방에서 우표 좀 꿔다 주시겠습니까? 등기로요. 등기로 보내야 확실하죠.”


  안훈도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소지의 인내심이 폭발했다. 임계점에 다다른 우라늄 235처럼 빅뱅이 일어났다. 창살로 다가와 단호하고도 육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눈꼬리도 치켜 올라갔다.


  “저기요. 저희 오늘 일과 끝났거든요?”


  틀린 말은 아니다. 소지 일과는 저녁 짬 처리할 때까지다. 한 소지가 짬통을 닦고 있을 때 다른 소지는 뜨거운 물을 포카리 스웨트 병에 담아서 방마다 나눠준다. 만약 소지에게 부탁할 일이 있으면 그 전의 일과시간 내에 하면 된다. 사실 우표 빌려다 주는 것이 큰일은 아니다. 안면이 있는 소지에게 부탁하면 얼마든지 들어준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갓 들어온 신입 죄수들이 아니던가? 또 소지와 아직 제대로 혀를 섞은 적도 없다. 앞서도 말했지만 소지와의 관계가 틀어지면 빵 생활이 결코 순탄하지 못하다.


  내가 박경헌을 잡아끌면서 소지에게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그냥 들어가세요. 죄송합니다.”


  소지가 박경헌을 노려보면서 돌아갔다. 박경헌은 우표가 필요한데 왜 내 옷을 잡아끄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조 선생이 말했다.


  “그러지 마! 왜 그래?”


  에디슨과 같이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는 표정이 된 박경헌은,


  “제가 뭐 잘못했습니까?”



-계속-

세 줄 요약.

1. 박경헌은 새벽에 닭다리를 뜯었다.
2. 박경헌이 접견을 했다.
3. 박경헌의 상태가 의심된다.

추천 비추천

6

고정닉 2

1

원본 첨부파일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비난 여론에도 뻔뻔하게 잘 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03 - -
268 제가 떼돈 벌던 시절의 게임기. [1191] 김유식 18.07.30 110206 612
231 [컬럼] 인터넷에 부는 홍어(洪魚) 매카시즘 [869] 김유식 14.05.15 274875 925
228 [횡설수설] 태국 방콕 카오산 동대문식당 짬뽕 [312/2] 김유식 13.06.16 36892 81
227 [횡설수설] 디시인사이드의 야후코리아 인수설. 그 내막. [200] 김유식 12.10.21 35699 160
226 [횡설수설] 2CH의 니시무라 히로유키. [152] 김유식 12.05.09 61363 243
224 [횡설수설] 강의석 씨의 절박한 옥중 단식 투쟁. [369] 김유식 11.09.21 26133 48
223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의정부 교도소에서 온 편지. [83] 김유식 11.09.12 28827 34
222 네놈을 살려두긴 "쌀"이 아까워! [898] 김유식 11.07.25 227856 175
219 [횡설수설] 출간. [683] 김유식 11.06.28 40373 21
218 [컬럼] 신보수 네티즌의 등장. [399] 김유식 11.03.14 41486 67
217 [횡설수설] 여행. [474] 김유식 10.12.22 42132 23
216 [옛날컬럼] 화가 나는 경영지침서. [136] 김유식 10.12.15 34840 36
215 [옛날컬럼] 커뮤니티 사이트 운영. [97] 김유식 10.12.10 21804 36
214 [옛날컬럼] 기업 메일 브랜드화? [157] 김유식 10.12.07 14404 14
213 [컬럼] 종북주의자들의 어불성설. [425] 김유식 10.12.03 29112 114
212 [옛날컬럼] 삶의 가치. [71] 김유식 10.11.30 17878 29
211 [옛날컬럼] 온라인 사기. [97] 김유식 10.11.26 23407 47
210 [옛날컬럼] 술버릇. [77] 김유식 10.11.23 17310 18
209 [옛날컬럼] 싱하형. [87] 김유식 10.11.22 162492 76
208 [옛날컬럼] 세운상가. [49] 김유식 10.11.19 16454 22
207 [옛날컬럼] 국가보안법. [57] 김유식 10.11.17 22569 78
206 [옛날컬럼] 500원. [53] 김유식 10.11.16 18462 29
205 [옛날컬럼] 펀딩 브로커. [42] 김유식 10.11.15 11481 13
204 [옛날컬럼] 초심. [84] 김유식 10.11.12 11886 10
203 [옛날컬럼] 채용. [46] 김유식 10.11.11 13973 22
202 [옛날컬럼] 러시아 아가씨 술집. [77] 김유식 10.11.10 51035 93
201 [옛날컬럼] 그들이 온다. [45] 김유식 10.11.09 10942 7
200 [옛날컬럼] 용팔이. [45] 김유식 10.11.08 17939 18
199 [옛날컬럼] 가격표기 오류 2. [43] 김유식 10.11.05 11805 6
198 [옛날컬럼] 가격표기 오류. [54] 김유식 10.11.03 13829 12
197 [옛날컬럼] DDR [90] 김유식 10.11.01 31179 46
196 [옛날컬럼] 악플러. [84] 김유식 10.10.29 16825 21
195 [옛날컬럼] 유두의 균열. [51] 김유식 10.10.28 22306 68
194 [옛날컬럼] 박살난 휴대폰. [36] 김유식 10.10.27 11539 11
193 [옛날컬럼] 게임머니. [41] 김유식 10.10.26 10489 9
192 [횡설수설] 최악의 크리스마스. [122] 김유식 10.10.12 15805 9
191 [횡설수설] 궁금한 거. [60] 김유식 10.10.07 12348 10
190 [횡설수설] 여자 교생선생님. [104] 김유식 10.10.04 34242 45
189 [횡설수설] 가끔씩 생각 나는 돼지. [81] 김유식 10.10.02 16522 8
188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출소 후 이야기. [175] 김유식 10.09.16 31219 31
187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26 "출소" 끝. [142] 김유식 10.09.09 28659 23
186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25 "항소심 선고공판" [69] 김유식 10.09.08 15326 10
185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24 [25] 김유식 10.09.07 10152 3
184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23 "탄원서" [34] 김유식 10.09.07 11261 6
183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22 "항소이유서" [49] 김유식 10.09.07 12088 4
182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21 "공판 하루 전" [62] 김유식 10.09.06 11144 3
181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20 "교화지원금" [70] 김유식 10.09.03 13469 4
180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19 "박도사의 예언" [44] 김유식 10.09.02 11343 4
179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18 "장오의 취직" [33] 김유식 10.09.01 10911 6
178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17 "목포 김 회장" [34] 김유식 10.08.31 11081 6
12345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